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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12:58


적당히 건강하라
약과 건강검진에서 벗어나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최선의 비결

나고 나오키 지음 | 김용해 옮김 | 유신애 감수


건강(건강정보)/사회학(노인복지)/과학기술(의학)
172쪽 | 14,000원 | 신국변형판(140mm×206mm) | 무선
ISBN: 979-11-963014-2-2 03510 | 2018년 12월 24일 펴냄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 알라딘, 영풍문고, 서울문고


근거중심의학 전문가이자 건강·의학 베스트셀러 작가인
중견 의사 나고 나오키가 말하는 노인 의료의 충격적 진실!

60대 중반 이후의 웬만한 질병은
치료를 하든 하지 않든 수명에 별 차이가 없다!

평균수명은 늘어도 건강수명은 늘지 않으므로
과도한 건강욕과 장수욕을 억제해야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

의료 과잉 시대에 세계 최장수 국가 일본에서 배우는
노인 적정 의료의 기본 원리!

건강한 80대인 김용해 카이스트 명예석좌교수가
자신의 건강 생활과 일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선택하고, 직접 번역해서 적극 추천하는
시니어 세대(실버 세대)의 건강·의학 필독서!

☞ YTN(이교준 기자) : [신간] "흘려보낸 날들의 뒷모습을 본다"...세밑에 찾아온 시심
☞ 중앙일보(서지명 기자) : "매년 건강검진 해야한다? 과연 맞는 말일까"
☞ 한국경제(윤정현 기자) : "정기 검진 대신 맛있는 음식을"...'적당히 건강하라' 출간
☞ 교수신문(전세화 기자) : [949호]새로나온 책
☞ 메트로신문(김현정 기자) : [새로나온 책] 적당히 건강하라 外
☞ 경기신문(정민수 기자) : 최장수국 일본에서 배우는 노인 적정 의료




2018년 일본은 70세 이상인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퍼센트를 넘어섰고 100세 이상 생존자가 7만 명을 넘었다. “일본에서는 1963년부터 매년 10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순은으로 만든 잔을 선물하며 축복해왔다. 그러나 고령자가 증가하면서 은잔 선물 대상자를 그해 100세가 되는 노인으로 한정했다. 또한 100세 이상의 고령자가 6만 5000명 이상으로 증가함에 따라 재정난이 닥쳐서 세금 남용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래서 2016년부터는 은으로 도금한 잔을 선물하고 있다.”(11쪽)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10월 현재 100세 이상 노인 인구가 1만 8500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올해 100세가 된 노인 1,343명이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인 ‘청려장(靑藜杖)’과 함께 대통령 내외로부터 장수 축하 카드를 받았다. 하지만 머지않아 일본처럼 이런 축하 행사도 더 간소하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언제까지나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욕망이다. 현대에는 첨단 의학과 의료가 그 욕망을 완전히 충족시켜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장수 국가인 일본의 현실을 보면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오래 살수록 행복해지지 않는 일본인”(32쪽)이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

근거중심의학 전문가이자 의학·건강 베스트셀러 작가인 나고 나오키는 신간 『적당히 건강하라』에서 노년에, 특히 60대 중반 이후부터 건강검진이나 약을 줄이거나 끊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면서 초고령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일깨워준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20년 넘게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을 바탕으로 진료해왔다. 쓸데없는 검사나 치료에서 탈피해 의학적 근거에 기초한 최소한의 검사나 치료로 질 높은 의료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이렇게 진료해오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세상의 의료 행위 중 상당 부분이 명확한 근거 없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의사가 이용하는 ‘근거 자체도 사실은 상당히 모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느낀 바를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65세가 넘은 사람은 정기 건강검진을 받을 필요가 없다.’ 정기 건강검진을 받으면 오히려 나빠질 수 있다. ‘정기 건강검진은 꼭 받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단순하게 생각하면 사실 정기 건강검진을 받으나 받지 않으나 65세 이후부터는 큰 차이가 없다. 정기 건강검진을 받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으로 취미 생활을 열심히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등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것에 투자해 현재를 소중하게 보내는 편이 훨씬 의미있다.
장수 대국이 되었지만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은 환영받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의 짐’으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일본에서 이제는 ‘노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라는 문제가 더 부각될 것이다. 행복의 형태는 개인마다 다르다. 이 책을 읽는 독자 모두가 각자 최선의 생활방식을 찾아서 행복한 노년을 보내길 바란다.

말년의 ‘건강하지 않은 10년의 수명’

일본에서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드는 평생의료비를 살펴보면, 의료비가 가장 많이 드는 연령은 75세부터 79세까지다. 평생의료비의 절반이 70세 이후에 몰려 있다. 수명이 연장되어 오래 살더라도 질병에 걸리거나 요양이 필요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즉 ‘수명 자체는 늘고 있으나 건강하게 오래 사는 소망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2013년 일본인의 평균수명은 남성이 80.21세, 여성이 86.61세인데, 건강수명은 남성이 71.19세, 여성이 74.21세로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가 남여 모두 10년 전후였다.

여기서 ‘평균수명’은 0세인 신생아가 언제까지 살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기대 연수를 뜻한다. ‘건강수명’은 건강상의 문제로 일상에 제약을 받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기간으로, 일상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기간을 말한다. 그래서 후생노동성 자료에서는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인 10년을 일상생활에 제약이 있는 ‘건강하지 않은 기간’이라고 설명한다. 말하자면 ‘비(非)건강수명’이라고 할 수 있는 기간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오래 살아도 말년에는 누구나 ‘비건강수명’을 겪게 마련이다.

물론 평균수명이나 건강수명의 연장에 의료가 어느 정도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매우 미미하다. 많은 사람이 약으로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여러 연구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검사를 자주 받고, 무엇인가 이상이 발견되면 바로 약을 먹고, 식사나 운동에도 신경을 쓰며 오로지 건강한 생활만 추구해도 사람은 나이가 들면 몸이 점점 쇠약해지게 마련이다. 이것은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흔히 이상적으로 죽는 방법은 ‘건강하게 살다가 갑자기 죽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죽기 전까지 건강하다가 갑자기 죽는 것은 사실 자살하거나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는 경우밖에 없다. 그런 이상적인 죽음을 꿈꾸는 것은 도박에 희망을 거는 것처럼 가능성이 매우 낮다.

70세가 지나면 인간은 빠르게 수명이 다해 간다

일본인의 생존곡선에 따르면, 70세가 지나면 그래프가 급격히 기울어져 많은 사람이 사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장수해서 고령일수록 생존곡선의 기울기는 가팔라진다. 사람은 100세가 넘으면 거의 사망하므로 수명이 늘어나 장수할수록 더 단기간에 많은 사람이 사망하게 된다. 특히 80대 10년 동안 남성의 70퍼센트, 여성의 40퍼센트가 사망한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사회 환경도 좋아지고, 많은 사람이 식사나 운동 등 생활습관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생존곡선의 기울기가 급격히 기울어지는 나이가 70세 이후라는 것은 바로 이 시기가 인간의 본래 ‘수명’임을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75세 이상의 평균 여명(餘命)은 1900년대와 1980년대를 비교해보아도 별반 차이가 없다. 9년 정도였다가 10년이 된 수준이다. 이에 비해 0세의 평균 여명이 50년에서 72~73년으로 대폭 늘어난 이유는 노인이 더 오래 살아서가 아니라 1~3세 유유아(乳幼兒)의 생존율이 비약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볼 때 인간은 평균수명과 관계없이 70세가 넘으면 사망에 이르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다. 즉 ‘고령이 되면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사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수해도 말년에는 질병에 걸리거나 간호가 필요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소망일 뿐이다.

오래 살수록 행복해지지 않는 일본인,
건강을 너무 추구하면 건강해지지 못한다


일본인은 왜 원하는 ‘건강과 장수’를 이루어도 행복해지지 않을까? 저자의 임상 경험에 따르면, 장수를 하면 ‘죽음이 무섭다. 하지만 오래 살아서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면 어쩌나’라는 생각에 깊이 사로잡혀 불행해질 수 있다. 그래서 ‘건강에 신경을 쓰는 것’이 의무처럼 되어 언젠가 ‘누워만 있게 되면 어떻게 하나’라고 불안해하며 노년을 보내게 된다. 이러한 고령자의 의식 이면에는 ‘장수하면서 주위에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면 건강에 신경 써서 언제나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라는, 무언의 사회적 압력이 적잖게 작용한다.

그래서 너 나 할 것 없이 ‘건강과 장수’를 계속 추구하게 되고, 그런 사람들에 관한 뉴스에 맞춰 제약회사나 의료기관도 ‘병을 치료한다’고 광고하며 신약과 새로운 치료법을 계속 내놓고, 이것이 다시 사람들의 ‘건강욕’과 ‘장수욕’을 부추긴다. 이러한 악순환 때문에 일본 전체가 ‘건강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문화’에 빠져들었다.

아무리 건강에 주의해서 약을 복용하더라도 이는 질병에 걸리는 시기를 조금 늦추는 것에 불과하며, 오래 살면 결국 어떤 질병이든 걸려 사망하게 된다. ‘병에 걸리면 어떡하나’, ‘자리보전하게 되면 어떡하나’ 등의 불안한 생각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렇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많은 사람이 ‘언제까지나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불가능한데도 건강과 장수에 너무 집착하다가 불행을 자초한다.

정상인지 이상인지 모호한 검사, 효과가 불확실한 건강검진

저자에 말에 따르면, “검사는 만능이 아니다. 오히려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경우가 흔한데, 이는 고령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고령이 되면 정기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데이터가 많다.”

세계적 석학으로 손꼽혀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번역자 김용해 교수는 「옮긴이의 말」에서 밝힌 것처럼, 고혈압과 관련된 내용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30년 전에 세계보건기구의 고혈압 기준치가 160/95mmHg였던 것이 근래에 140/90mmHg로, 다시 130/80mmHg로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의사의 처방에 따라 많은 사람이 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 그것도 평생 복용해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혈압이 150/80mmHg인 환자가 10여 년간 혈압 약을 계속 복용해 오다가 4~5년 전부터 복용하지 않았더니 그동안 있었던 어지럼증이 사라지고 혈압 수치도 별 이상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2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혈압은 나이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러나 혈압 검사에서의 판정 기준은 연령대나 성별을 따지지 않으며 일률적이다. 혈압의 기준치는 매우 모호하며, 정상과 이상의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은 그로 인한 영향을 바로 받는다. 예를 들어 수축기 혈압이 135mmHg인 사람은 고혈압 기준치가 147mmHg면 정상이지만 130mmHg면 이상이 된다. 혈압 수치는 하나여도 어느 기준치로 판단하느냐에 따라 치료 필요성이 달라지므로 문제가 된다. 혈압을 측정하고 나서 “혈압이 좀 높은 편이다”라는 결과가 나와도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혈압 치료 연구에서 수축기 혈압이 130~140mmHg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경우는 내가 아는 한 없다. 그러므로 130mmHg라는 고혈압 기준은 적어도 치료 효과를 근거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 여러 제약회사의 입장에 따라 그저 약 판매와 관련하여 결정된 것이다. 혈압 수치의 작은 차이 때문에 ‘일희일우(一喜一憂)’할 필요가 없다. 경계에 있는 사람들은 성급하게 약을 복용하지 말고 잠시 기다려보는 것이 좋다.”

저자는 이 밖에도 당뇨병, 대사증후군, 갑상샘암, 전립샘암, 유방암, 대장암 등에 대한 검사를 구체적인 예로 들며 “조기 발견, 조기 치료”를 위한 검사나 건강검진의 효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특히 65세 이상인 노인에 대해서는 별 효과가 없음을 여러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주장하고 있다.

약을 끊거나 줄일수록 약이 된다

저자는 “약은 가급적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면서 약효가 과장되어 발표되는 “숫자 놀음”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약이 개발될 때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고령자에 대한 약의 부작용이나 위험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한다. 저자는 “당뇨병 약으로 혈당 수치를 낮추어도 합병증이 별로 감소하지 않는” 이유를 여러 연구 결과에 기초해 설명하면서, 모든 병을 약으로 해결하려 들기보다 “만성질환과는 적당히 친한 것이 좋다”, “콜레스테롤 수치는 약간 높은 정도여야 장수한다”, “시중의 종합감기약은 부작용 위험이 높다”, “의사는 약의 효과가 작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텔레비전의 의료 프로그램이나 광고를 그대로 믿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울러 약을 무조건 끊으라고 하지 않고, “약을 줄이는 방법과 끊는 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약을 줄이려면 먼저 주치의와 상담해야 한다. 의사와 상담하면서 서서히 줄이는 것이 안전하다. 혈압 약은 한 종류만으로도 효과가 있는 경우 집에서 혈압을 측정하며 서서히 끊어도 좋다. 절반 정도의 사람들이 약을 끊어도 정상 혈압을 유지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외래 진료에서 측정한 혈압에 따라 약을 늘린 사람은 집에서 측정한 혈압을 기준으로 처방받으면 더 적은 약으로 혈압이 잘 조절할 수 있다. 또 경우에 따라, 뇌중풍이 5년 뒤에 발생하나 3년 뒤에 발생하나 매한가지라고 생각되면 혈압 수치에 관계없이 약을 끊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중략)
인지증(치매) 약은 단번에 전부 끊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면 식욕이 개선돼서 인지가 오히려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 원래 이 약은 증상에 대해 처방되는 것이므로 증상이 나빠지면 그때 가서 복용하면 될 뿐이다.
요컨대 고혈압, 고콜레스테롤, 당뇨병, 인지증 등에 쓰이는 약은 그 효과를 입증하는 수준 높은 연구 결과가 많다. 그래도 의외로 끊을 수 있다. 우선 신뢰할 만한 연구로 효과가 정확히 표시되어 있지 않은 약은 빨리 끊는 것이 좋다. 평소 자신이 복용하는 약의 어떤 효과를 입증한 연구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다. 고령에 외출이 힘들고 식사량이 줄고 약을 복용하는 것도 힘들면 오히려 약을 전부 끊어보는 것이 여러모로 약이 될 수도 있다.

의료를 맹신하지 말고 과학적으로 생각하라

현대인들은 모든 질병을 조기에 발견해 조기에 치료해야 좋다고 믿으면서 정기 건강검진을 받아야 안심이 되는 소위 ‘검사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 그래서 단순히 검사 수치를 정상으로 바꾸거나 유지하려고 온갖 약을 끊임없이 복용하고, 불필요한 건강기능식품이나 건강보조식품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지나친 건강욕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저자는 “건강식품은 ‘비건강식품’”이라고 말하면서 “약보다 무서운 건강보조식품을 멀리하라”, “과학적으로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일본은 세계보건기구가 놀랄 정도의 백신 후진국”이라고 비판하면서 “가장 유효한 의약품은 ‘백신’”이라고 말한다. 끝으로 저자는 “나이 들면 몸이 약해지는 것을 인정하고” “‘건강하게 장수하는’ 흐름에 휩쓸리지 말고” “무리하게 건강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약을 먹으며 안달하는’ 것보다 ‘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는 “잘 살고 잘 죽는 좋은 인생”을 살 것을 호소한다.

■ 추천 서평
60대 중반 이후에는 약과 건강검진을 멀리하라는 주장에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조기 발견?조기 치료”라는 말이 완전히 뿌리 내린 일본에서는 “검사를 받으면 안심”하는 풍조가 마치 “검사 신화” 같은 의식으로 굳어져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후생노동성의 조사에 따르면, 의료의 눈부신 발달에도 불구하고 70세 이상의 “건강수명”은 그다지 연장되지 않는다. 이 책은 건강을 절대의무처럼 여기는 사회에 이의를 제기한다. - 《마이니치신문》

■ 지은이 나고 나오키
1961년 일본 나고야에서 출생했으며, 1986년 지치 의대를 졸업하고 나고야제2적십자병원에서 수련했다. 1988년부터 아이치현의 벽지에 위치한 사쿠테무라국민건강보험진료소에서 소장으로 활동하다가 1992년 지치 의대로 돌아와 지역의료학을 공부했으며 1995년부터 다시 사쿠테무라국민건강보험진료소에서 소장으로 일했다. 2003~2011년 (사)지역의료진흥협회 지역의료연수센터장, 2004~2006년 시립이토시민병원 임상연수센터장, 2005~2011년 도쿄쿠사회보험병원 임상연수센터장을 역임했고, 니혼 대학, 도쿄 대학, 게이오 대학을 비롯한 많은 대학에서 강사와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2011년부터는 도쿄 무사시코쿠분지공원클리닉 원장으로 활동하며 지역 의료, 가정의학, 임상역학, 의학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저서로 『근거중심의학 실전 워크북』, 『인간은 죽는다: 그래도 의사가 할 수 있는 일』, 『약으로 치료한다는 거짓말』, 『‘건강 제일’은 옳지 않다』, 『질병과 약: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법』, 『치료를 주저하는 당신은 의외로 옳다』, 『후회하고 싶지 않으면 ‘의사가 하라는 대로만’ 하지 말라』 등이 있다.

■ 옮긴이 김용해
1939년에 출생했으며 일본 오카야마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오사카 대학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하여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1년부터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와 국립보건원(NIH)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다가 1975년 일본 쓰쿠바 대학 조교수로 부임해 부교수를 지냈고, 1979년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부교수로 부임해 교수 및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1983년 미국 국립보건원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1992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 대학원 강의교수와 파리 Ⅳ 대학 초빙교수를 지냈다. 40여 년간 국내외에서 유기화학 연구 및 교육 활동을 해왔으며, 연구 업적으로 SCI 등록 논문 223편, 영문 종설 15편, 영문 저서 8편이 있고, 박사 학위 연구자 150여 명을 양성했다. 2000년 상허학술대상, 2001년 3·1문화상, 2003년 카이스트 학술대상, 2004년 과학기술훈장 혁신장(대통령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카이스트 명예석좌교수,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제3세계 학술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차례
옮긴이의 말
번역 감수자의 말
머리말

1장. 건강을 너무 추구하면 건강해지지 못한다
2장. 정상인지 이상인지 모호한 검사의 진실
3장. 효과가 불확실한 건강검진
4장. 약을 끊거나 줄일수록 약이 된다
5장. 의료를 맹신하지 말고 과학적으로 생각하라
6장. 초고령 사회를 사는 지혜

2019.01.04 13:39

프로파간다
대중 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


에드워드 버네이스 지음 | 강미경 옮김

275쪽 | 값 15,000원 | 변형판(138×204) | 언론, 심리, 경영
ISBN  978-89-958945-7-6 | 2009년 7월 20일 펴냄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 알라딘, 영풍문고, 서울문고


괴벨스가 탐독하고 촘스키가 극찬한 선전과 홍보의 고전!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조카이자 “PR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대표작 『프로파간다』

MBC “신기한 TV 서프라이즈”(519회)에 소개된 “PR의 고전” [프로그램 다시보기]



☞ 한국경제 | [다시 읽는 명저] "대중이 믿는 진실은 선전에 정복당한 지식" (김태철 논설위원)
☞ 중앙일보 | [분수대] 나를 조종하는 자는 누구인가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 한겨레 | [사설 속으로] 한겨레·중앙일보, ‘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사설 비교해보기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 국민일보 | [책과 길] 국민의 뜻이라고?… 여론은 선전에 조종된다 (김호경 기자)
☞ 매일경제 | 대중은 광고를 이길 수 없다 (이창훈 기자)
☞ 연합뉴스 | 'PR의 아버지'가 말하는 선전 전략 (김지연 기자)
☞ 한국경제 | [책마을]대중을 사로 잡는법, PR고전에서 배워라 (유재혁 기자)
☞ 미디어스 | [김석의 미디어 책읽기 40: 프로파간다 (에드워드 버네이스, 2009)]미디어산업 선진화? 끔찍한 ‘선전’
☞ 경향신문 | [오늘의 사색]프로파간다 (노명우. 아주대 교수)
☞ 한겨레21 | [새책] <프로파간다> 외 (구둘래 기자)
☞ 디지털타임스 | [BOOK] 프로파간다 (이지성 기자)
☞ 전자신문 | [데스크라인]프로파간다 전쟁 (장지영 통신방송산업부장)
☞ 한겨레21 | [이주의 키워드]누구는 된다, 안 된다 (김완 기자)
☞ 주간경향 | [새책]프로파간다
☞ 미디어오늘 | [새책]프로파간다 (김수정 기자)
☞ 서울경제 | 대중심리를 끌어내는 '선전' 전략 (김지아 기자)
☞ 파이낸션뉴스 | [윤중로]여론조종자들 (조석장 정치부장·부국장)

오늘날 신문, 잡지, 텔레비전 등과 더불어 무선 전화, 인터넷 같은 첨단 미디어 덕분에 누구든 쉽고 빠르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생각이나 개념을 전파해 대중의 심리와 행동에 영향을 끼치고 여론을 형성해 조종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도 더욱 교묘해졌다. 우리는 생필품이나 주식을 사고, 영화나 공연을 예매하고, 책을 사고, 휴가지를 정하고, 대통령을 뽑을 때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대개는 기존에 유포된 정보를 보고 들어서 무의식중에 대중 심리에 편승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PR(Public Relations, 홍보)이라고 하면 익숙한 “자기 PR”이라는 말 때문에 “자신을 자신감 있게 알리는 행위”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선전(propaganda)이라고 하면 ‘선전·선동’이라는 표현과 함께 ‘음험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배후에서 악의적 정보를 유포해 대중을 오도하는 행위’와 같은 부정적 어감을 떠올린다. 두 말 모두 원래 의미와 상당히 거리가 멀어진 예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런 현대의 홍보(PR)와 선전은 언제 어떻게 탄생했을까?

광고와 퍼블리시티(publicity, 광고주가 드러나지 않는 홍보용 언론 보도)를 포괄하는 개념인 PR은 20세기 초에 미국의 아이비 레드베터 리(Ivy Ledbetter Lee)와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Bernays) 등에 의해 확립됐다. 특히 20세기 초반에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PR을 과학적인 학문이자 독립적인 산업으로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버네이스는 대중심리학에 삼촌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결합하여 최초로 홍보와 선전에 이용했고, 대학교에서 최초로 ‘홍보’라는 교과과정을 가르쳤으며, 최초의 PR 전문서도 펴냈다. 오늘날 ‘PR의 아버지’로 불리는 버네이스는 늘 자신을 “PR 고문(PR counsel)”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버네이스는 원래 ‘PR’보다는 ‘선전(propaganda, 프로파간다)’이라는 용어를, ‘PR 고문’보다는 ‘선전가(propagandist, 프로파간디스트)’라는 호칭을 선호했다. 하지만 과거 수세기 동안 종교적 뉘앙스를 풍기는 중립적 의미의 단어였던 ‘선전’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부정적 의미로 바뀌어버리자 그는 더 이상 ‘선전’을 자신의 직업과 연관 지어 자유롭게 쓸 수 없게 됐다. 선전·선동에 홀려 전쟁에서 혈육과 이웃사촌을 잃은 대중은 더 이상 ‘선전’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래도 버네이스는 ‘선전’이라는 말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않고 ‘선전’에서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내려고 노력했다. 『프로파간다』는 그러한 노력이 가장 돋보이는 야심작이다. 이 책에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약 10년간의 다양하고 광범위한 선전 활동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하나같이 창의성이 번득일 뿐만 아니라 선의의 목적과 정직한 실천 전략을 특징으로 하는 당시의 선전 사례를 자세히 조망함으로써 버네이스는 ‘선전’이라는 말에서 나쁜 냄새를 제거하려고 시도한다.

버네이스는 스스로를 ‘진리를 추구하는 자이자 선전을 선전하는 자’라고 여겼다. 그래서 선전을 변호하고 선전이 대중 사회에 미치는 건전한 영향력을 강조함으로써 ‘홍보(PR)’를 널리 광고했다. 그는 1928년에 이르러 날로 성장하는 홍보 분야에서 선두의 위치에 올랐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 합법성을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 사업체도 성공리에 꾸려나갔다. 『프로파간다』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듯하지만 사실은 그의 잠정 기업 의뢰인을 주로 겨냥하고 있다.

그에게는 ‘홍보’를 통해 정보가 오가는 세상이란 그저 ‘원활하게 기능하는 사회’일 뿐이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선량하고 합리적인 엘리트 집단이 조작하는 대로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채 안내를 받으며 삶을 영위한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선의의 현대적 선전을 ‘새로운 선전’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아쉽게도 ‘선전’을 선전하려는 버네이스의 야심찬 저술 의도는 빗나가고 말았다. 나중에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선전’은 본래의 순수성과, 자신의 직업인 ‘PR’과 더욱 멀어졌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이 책 덕분에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고 새로운 의뢰인들을 확보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출간 후 8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홍보와 선전의 고전이자 베스트셀러로 전 세계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심지어 1930년대에는 히틀러의 유명한 선전장관 괴벨스도 버네이스의 열렬한 팬으로서 이 책을 탐독했다. 괴벨스는 유대인 학살과 전쟁을 위해 독일 국민을 선동하는 데에 버네이스의 PR 기술을 마음껏 악용했다.

이번에 한국어로 처음 소개되는 이 책은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이탈리아어를 비롯해 이미 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독일어판 번역자인 PR 기업 포르토칼리(Portocali) 대표 파트리크 슈누르(Patrick Schnur)는 이 책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버금가는 고전 전략서”라고 했다. 일본어판 번역자인 소에지마(副島)국가전략연구소 연구원 나카타 야스히코(中田安彦)는 “조종하려는 자와 조종당하지 않으려는 자, 모두가 읽어야 할 필독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아, 또 광고에 속았다!’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촘스키는 버네이스를 “구루(guru)”라고, 자신의 프로파간다 이론의 모델로 삼은 이 책을 “홍보 산업의 핵심 매뉴얼”이라고 극찬했다.

조종하려는 자와 조종당하지 않으려는 자, 모두가 읽어야 할 필독서!

위의 권위 있는 서평들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는 ‘통치 수단으로서의 선전’과 ‘PR 산업으로서의 선전’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버네이스는 1장에서 “대중의 관행과 의견을 의식과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사회의 이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조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국가의 권력을 진정으로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invisible government)’를 이룬다.”(61쪽)라고 말한다. 또 “일상의 거의 전 분야에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집단의 지배를 받는다.”(62쪽)라고 하며 선출되거나 권위를 인정받는 소수의 엘리트에 의한 지배가 필연적이라고 보고 그 지배 수단인 선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버네이스는 1장 마지막에서 다음과 같이 저술 의도를 명시하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대중의 마음을 지배하는 메커니즘에 이어, 특정 생각이나 제품을 대중에게 선보이고자 할 경우 그러한 메커니즘을 어떻게 조작해야 대중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데 있다. 아울러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 새로운 선전의 합당한 위상을 모색하는 한편, 서서히 진화해 나가는 선전 윤리 및 실천 규범도 제시하고자 한다.”(74쪽)

버네이스는 선전을 이용해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는 방법을 보여주면서 ‘선전’의 명예 회복을 시도하고 선전가들이 지켜야 할 윤리 규범도 제시한다. 그럼으로써 은근히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선전의 긍정적 이미지를 부각시켜 자신의 직업에 대한 대중의 호감을 높이려는 시도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선전을 위한 너무나 선전적인’ 책이다. 2004년 이 책에 해설 겸 「머리말」을 쓴 뉴욕 대학교 미디어학 교수 마크 크리스핀 밀러(Mark Crispin Miller)는 이렇게 말한다. “선전을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들조차 선전에 쉽게 넘어간다. 버네이스는 그러한 역설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우리를 위해 만든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면 우리 또한 그 역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50쪽)

버네이스는 1장부터 4장까지 선전의 의미와 역할, PR의 기본 원리와 적용 사례를 보여준다. 그리고 5장부터 10장까지 각 장별로 기업, 정치, 여성의 활동, 교육, 사회사업,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 선전을 통해 가치와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특히 4장에서는 기업과 대중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며 자신의 직업인 PR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대중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거나 함부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무정형의 덩어리가 아니다. 기업은 대중이 이해하고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목적을, 목표를 알려야 한다. 기업과 대중의 관계는 주고받는 관계가 될 때 비로소 건강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조건과 필요성이 PR이라는 전문화된 영역에 대한 수요를 창출해왔다. 현재 기업은 대중과의 관계에서 조언을 하고, 기업의 목적을 대중에게 설명하고, 대중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개선점을 제시하는 PR 고문을 기용하고 있다.”(139~140쪽)

또 5장에서는 정치를 비판하며 전문적인 선전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가 직면하는 커다란 문제는 어떻게 하면 지도자가 지도력을 올바로 발휘하게 하느냐이다. 민심은 국민의 생각을 표현하며, 국민의 생각은 국민이 신뢰하는 지도자와 여론 조작에 능한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다. 다행히 성실하고 유능한 정치인은 선전이라는 도구를 통해 국민의 의사를 주조할 수 있다. 정치는 미국에서 선전을 대규모로 활용한 첫 번째 분야에 속하지만 오늘날에는 달라진 대중의 심리 상태를 충족하는 선전 방식에서 가장 뒤쳐져 있다. 미국 기업들은 폭넓은 대중에게 호소하는 방법을 맨 처음 정치에서 배웠다. 하지만 그 후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기업은 이런 방법을 끊임없이 갈고 다듬었다. 반면 정치는 낡은 틀을 고수했다. 정치는 미국 최초의 대기업이었다. 따라서 기업은 정치에서 모든 것을 배운 데 비해 정작 정치는 기업으로부터 생각과 제품의 대량 보급 방법을 별로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171~174쪽)

마지막 11장에서는 선전의 원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선전가가 선전을 통해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에는 오늘날 사람들이 서로 생각을 주고받는 수단이 모두 포함된다. 인간의 의사소통 수단은 모두 선전 수단이 될 수 있다. 선전은 개인과 집단 사이에 상호 이해의 다리를 놓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선전 도구의 상대적 가치와, 그러한 도구가 대중과 맺는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선전가는 염두에 두고 있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선전가는 시시각각 발생하는 가치의 이러한 변화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251쪽)

아울러 그는 시대를 초월해 미래를 내다보는 깊은 통찰력이 담긴 말로 책을 맺는다.
“대중은 자신의 견해와 습관을 형성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 방법들의 실체를 갈수록 꿰뚫어보고 있다. 자신의 생활이 전개되는 과정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대중은 자신의 이해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광고를 훨씬 더 쉽게 받아들일 것이다. 대중이 광고 방법에 대해 아무리 까다롭고 냉소적으로 나온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반응하게 되어 있다. 대중은 늘 음식을 필요로 하고, 오락을 갈구하고,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지도자를 따르기 때문이다. 대중이 자신의 경제적인 수요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면 기업은 새로운 기준에 맞추어야 한다. 대중이 자신을 설득해 생각이나 상품을 구입하도록 하기 위해 사용되는 낡은 방법에 싫증을 낸다면 대중을 이끄는 지도자들은 더욱 현명하게 호소력을 발휘해야 한다. 선전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일수록 선전은 생산적인 목표를 달성하고 무질서를 바로잡는 데 필요한 현대적 도구라는 점을 직시한다.”(260~261쪽)

전설적인 천재 선전가 에드워드 버네이스

버네이스에게는 “PR 산업의 선구자”라는 칭호도 따라다녔다. 그는 실제로 PR을 산업으로 일궈냈고 선전과 PR을 통해 20세기 미국과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제1차 세계대전 때 그는 연방공보위원회(CPI)에 발탁되어 독일 등에 맞서 뛰어난 선전 전략을 펼치고 파리강화조약과 국제연맹 결성 관련 선전과 홍보를 주도했다. 1922년에는 오랜 친구이자 동업자인 도리스 E. 플레이시맨과 결혼했는데, 자신의 결혼마저 선전의 기회로 활용했다. 그는 자신에게 홍보를 의뢰한 월도프 애스토리아 호텔의 숙박부에 아내의 성명을 처녀 시절 성으로 기재하고 그곳에서 결혼식을 올림으로써 250여 개 신문에 ‘사상 처음으로 부인이 남편과 다른 원래 성(姓)으로 숙박 등록을 한 사례’로 대서특필됐다. 이 일로 도리스는 여권 운동의 새로운 상징이 됐다.

1924년에는 프록터&갬블(P&G)의 아이보리(Ivory)라는 비누의 판촉을 위해 전국비누조각경연대회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대성공을 거뒀으며 이후 1961년까지 계속됐고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로 전파됐다. 같은 해에 캘빈 쿨리지(Calvin Coolidge) 대통령의 재선을 돕기도 했다. 쿨리지 대통령은 1923년 워런 G. 하딩(Warren G. Harding) 대통령이 재임 중에 사망하자 부통령에서 대통령으로 올라선 뒤 1924년에 대선 후보로 다시 지명됐다. 홍보 의뢰를 받은 버네이스는 쿨리지의 까다롭고 차가운 이미지와 평판을 극적으로 바꾸어 무난히 당선될 수 있게 했다.

1925년에는 베이컨 제조회사인 비치너트 패킹 컴퍼니(Beech-Nut Packing Company)의 요청으로 베이컨 매출을 늘리기 위해 미국인들의 주된 아침식사 메뉴를 주스, 토스트, 커피 등에서 베이컨과 달걀로 바꿔버렸다. 1928년에는 아메리칸 토바코 컴퍼니(American Tobacco Company)의 ‘러키 스트라이크(Lucky Strike)’라는 담배의 홍보를 의뢰받아 수년간 여성들에게 흡연을 ‘자유의 횃불’이라는 여권 신장의 상징으로 각인시킴으로써 여성 흡연율을 몇 배로 높이고 담배 시장을 크게 확대했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의상과 잘 어울리지 않는 녹색 담뱃갑을 고수하는 이 담배 회사를 위해 패션의 흐름을 아예 녹색으로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자신은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았고 아내의 흡연조차 극구 반대했다.

1929년에는 토머스 에디슨의 전구 발명 50주년을 기념하는 “빛의 황금 축제”를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행사로 기획하고 진행하여 수많은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사실 이 행사는 제너럴 일렉트릭(GE)과 미국전력협회의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버네이스의 주도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선전극이었다. 1930년대에는 사이먼 앤드 슈스터(Simon and Schuster), 하코트 브레이스(Harcourt Brace), 크노프(Knopf) 같은 대형 출판사들의 의뢰를 받아 도서 판매를 늘리기 위해 가정에 붙박이 책장 설치를 유행시켰다. 1933년에는 권력을 장악하기 직전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로부터 PR 자문 요청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과일 유통회사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United Fruit Company)는 오랫동안 미국 과일 시장을 석권해온 대기업이었다. 그런데 과테말라에서 이권을 약속했던 군사 정권이 물러나고 1945년 민주 정부가 들어서서 몰수와 분배 같은 친(親)공산주의 정책을 펴자 이 회사에 위기가 닥쳤다. 이에 버네이스는 여론을 조작해 과테말라를 소련의 공산주의 전초기지로 낙인찍어 중앙정보부(CIA)를 움직임으로써 1954년 과테말라 민주 정부를 전복시키고 친미 성향의 과두정부가 들어서게 했다.

1960년대 들어 버네이스는 “1928년에 알았더라면 담배 회사의 의뢰를 거절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담배의 위험성을 홍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60년대 초에 은퇴할 때까지 그는 거의 반세기 동안 435명의 의뢰인에게 PR 자문을 해주었는데, 의뢰인 명단에는 대통령부터 노동조합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계, 재계, 교육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등을 대표하는 유명 인사와 기업, 기관과 단체가 망라됐다.

*** 이 책 『프로파간다』를 통해 버네이스는 ‘선전’을 당시로서는 가장 완전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보여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 20세기의 정치적 선전이 전체주의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의 자유로운 민주주의의 심장에서 탄생했음을 알 수 있다. 버네이스는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면서 동시대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려고 한다. 선전과 홍보를 이용하는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교육가, 예술가 등은 물론이고 대중 심리 조종과 여론 조작에 대해 궁금해하는 모든 대중을 위한 필독서라 할 수 있다.

■ 해외 서평

에이브럼 노엄 촘스키(MIT 대학교 석좌교수)
이 책은 홍보 산업의 핵심 매뉴얼이다. 버네이스는 구루(guru)로서 홍보 산업을 주도했다. 현대 자본주의 민주 국가들의 유력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들은 버네이스의 솔직하고 실용적인 매뉴얼에서 많은 통찰력을 얻고 있다.

《뉴욕 타임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조카이자 현대 PR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1928년 저술 『프로파간다』는 심리학을 이용한 광고로 여론을 조작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 변론을 하고 있다.

《보스턴 글로브》
버네이스는 히틀러의 선전장관인 괴벨스의 서재에 이 책이 꽂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심한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1930년대 초에 히틀러는 버네이스를 기용하려고까지 했다.

《BBC》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PR의 현대적 발달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1920년대에 PR을 전문직으로 만들었으며,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최초로 여론 조작에 이용했다.

《라이프》
버네이스는 20세기 100대 미국인 중 유일한 PR인.

파트리크 슈누르(독일 PR 기업 ‘포르토칼리’ 대표. 독일어판 번역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버금가는 고전 전략서이다.

《벨트》(독일 일간지)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버네이스의 아이디어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타게스차이퉁》(독일 일간지)
버네이스는 홍보(PR)의 효용성을 설명하면서 선전(propaganda)에 대한 균형 잡힌 인식을 도모한다.

나카타 야스히코(일본 소에지마(副島)국가전략연구소 연구원. 일본어판 번역자)
촘스키의 프로파간다 이론의 모델이 된 책이다. 조종하려는 자와 조종당하지 않으려는 자 모두가 읽어야 하는 필독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아, 또 광고에 속았다!”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모리타 미노루(일본 정치평론가)
이 책에는 현대 매스컴의 여론 조작의 근본 원리가 담겨 있다.

《르몽드》(프랑스 일간지)
버네이스에 따르면 민주 사회에서는 대중의 의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설득의 기술을 만들어내는 지배 계급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는 대중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을 이용해 ‘적극적 설득’을 펼쳐 보인다.

《뤼마니테》(프랑스 일간지)
버네이스에 따르면, 대중의 관행과 의견을 의식과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다. 그에게는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옛말이 군색하기 그지없다.

《렉스프레스》(프랑스 주간지)
이 책은 모든 고등학생의 교육 프로그램에 포함돼야 한다. 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대중은 ‘조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리가드》(프랑스 월간지)
대중 심리의 주요 특성을 그려낸 흥미로운 작품이다. 현대의 정치적 선전이 자유민주주의의 심장부에서 탄생했음을 보여준다.

《라데크루아상스》(프랑스 월간지)
광고의 공격에 저항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의욕을 불어넣어 주는 책이다.

노르망 바이야르종(캐나다 퀘벡 대학교 교육학 교수. 프랑스어판 서문 저자)
‘선전을 선전’하는 야심찬 이 작품은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르드부아르》(캐나다 일간지)
버네이스는 선전의 마키아벨리다. 그는 괴벨스가 유대인 학살 계획에 자신의 선전 기술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받았다. 버네이스는 선전을 공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라프레세》(캐나다 일간지)
버네이스는 프로이트의 조카이면서 정보조작의 아버지다. 이 책은 여전히 정책가들의 필독서다. 버네이스에게 선전은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의 실행 부대다.

■ 지은이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Louis Bernays)
1891년 11월 2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했으며,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조카이다. 곡물상으로 성공한 아버지 일라이 버네이스는 프로이트의 아내인 마사 버네이스의 오빠이고, 어머니 안나 프로이트는 프로이트의 여동생이다. 한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으며, 아버지의 뜻에 따라 코넬 대학교에서 농학을 전공했다. 1912년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시상품거래소에서 곡물 유통 업무를 하다가 그만두고 친구의 의학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며 홍보(PR) 업무를 시작했는데, 언론 대행인으로서 여러 문화 행사를 성공리에 이끌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연방공보위원회(CPI)에 발탁되어 독일 등에 맞서 뛰어난 선전 전략을 펼쳤다. 전후 1919년에는 뉴욕에서 최초로 ‘PR 고문’이라는 직함을 달고 PR 전문 사무실을 열었다. 대중심리학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결합하여 최초로 선전과 홍보에 이용했고 홍보를 과학으로, 산업으로 정립했다. 1923년에는 뉴욕 대학교에서 최초로 ‘홍보’라는 교과과정을 가르쳤고 최초의 PR 전문서인 『여론 정제(Crystallizing Public Opinion)』도 출간했다. 그는 거의 반세기 동안 435명의 의뢰인에게 PR 자문을 했는데, 의뢰인 명단에는 대통령부터 노동조합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계, 재계, 교육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등을 대표하는 유명 인사와 기업, 기관과 단체가 망라됐다. 1995년 3월 9일 103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수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그를 ‘PR의 아버지’로 기렸다. 저서로 『프로파간다(Propaganda』, 『홍보(Public Relations)』, 『합의의 조작(The Engineering of Consent)』 등이 있다.

■ 옮긴이 강미경
이화여자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번역서로 『배드 사이언스』, 『작가 수업』, 『사티리콘』, 『헤밍웨이 vs. 피츠제럴드』,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 『유혹의 기술』,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 『최초의 아나키스트』, 『아포칼립스 2012』, 『마르코 폴로의 모험』, 『고대 세계의 위대한 발명 70』 등이 있다.

■ 차례

추천의 글
 머리말

1장 혼돈에서 질서로
2장 새로운 선전
3장 새로운 선전가
4장 PR의 심리학
5장 기업과 대중
6장 선전과 정치 지도력
7장 여성의 활동과 선전
8장 교육을 위한 선전
9장 선전과 사회사업
10장 예술과 과학
11장 선전의 원리

저자에 대하여
옮긴이의 글

2019.01.02 11:57

전쟁 사기

스메들리 버틀러 지음 | 권민 옮김
144쪽 | 12,000원 | 신국판 변형(140×215) | 무선
ISBN 978-89-964600-7-7  03390 | 2013년 6월 25일 펴냄

교보문고 | 예스24 | 인터파크 | 알라딘 | 반디앤루니스 | 영풍문고

지난 80여 년 동안 전 세계인에게
놀라움과 감동과 교훈을 안겨준 반전 클래식!

미국 해병대 역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전쟁 영웅이 고백하는 전쟁의 충격적 진실!

탐욕적인 군산복합체의 실체를 최초로 고발한 화제작 한국어판 최초 출간!

반전 문학의 백미로 불리는 마크 트웨인의 『전쟁을 위한 기도』 수록!

반전주의자가 된 전쟁 영웅, 스메들리 버틀러

1881년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퀘이커교 집안에서 태어난 버틀러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1898년에 스페인-미국 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분위기에 휘말려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신병 교육을 받고 소위로 임관해 쿠바로 파견된 것을 시작으로 34년 동안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에서 미국의 군사 작전을 이끌었다. 무려 121회의 전투에 참여했고 목숨이 위태로운 큰 부상을 두 차례나 입었다. 그러면서 미국 해병대 역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받았다. 퇴역하기 전까지 모두 16개의 훈장을 받았으며 그 가운데 5개는 무공 훈장이다. 미국 군 역사상 해병대 최고 훈장인 ‘브레빗 훈장’과 두 개의 의회 ‘명예 훈장’을 수훈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그는 스페인-미국 전쟁 때부터 시작된 미국의 군사적 모험주의와 간섭주의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가이면서 평화주의자였다. 퇴역을 즈음하여 그는 자신의 과거, 조국과 세계의 변화를 회고하고 통찰하며 열정적인 반전 연설과 평화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현역으로 있으면서 더 이상 “자본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위에 맞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주창한 헌법상의 기본 원칙을 널리 전파하는 연설가로 변신했다. 즉 자유민주주의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비간섭주의와 평등 외교를 호소했다.

그는 1930년대에 미국 700여 개 도시를 돌며 1,200여 회의 연설을 했다. 기업들의 전시 부당이득 취득, 미국의 군사적 모험주의, 미국에서 세력을 넓혀가기 시작한 파시즘에 반대하는 거리낌없는 연설로 전국적인 명성과 지지를 얻었다. 이후 해외 참전군인들의 권익 신장, 미국의 군비 확장 반대, 국외 전쟁 개입 반대,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참전 반대를 주장하며 대중과 정치인들을 상대로 활발한 반전 평화 활동을 펼치다가 1940년에 세상을 떠났다.

군산복합체의 실체를 최초로 고발한 화제작, 『전쟁은 사기다』

1935년 버틀러는 미국 기업들의 전시 부당이득 취득에 관한 신랄한 비판을 담은 『전쟁은 사기다』를 출간했다. 1930년대 초 전국을 누비며 한 연설을 보강해서 펴낸 이 책에서 그는 매우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밝히고, 애국심과 영웅심으로 포장된 전쟁의 추악한 이면을 고발했다. 그래서 대중들의 뜨거운 찬사와 전시 부당이득 취득자들의 차가운 비난을 함께 받았다.

미국을 대표하는 반전 문학으로 손꼽히는 이 짧은 에세이는 지금도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교양서이자 교육서로 널리 읽히고 있으며, 스페인-미국 전쟁 이후 사실상 비간섭주의를 포기한 미국의 군사적 침략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비판하는 중요한 준거 자료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군산복합체(軍産複合體, 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실체를 처음으로 밝혔다. ‘군산복합체’라는 용어는 1961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퇴임 연설에서 비롯됐지만 버틀러는 이미 한 세대 전에 선구적으로 군산복합체의 적나라한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미국에서 재계와 산업계가 정계를 등에 업고 군부를 앞세워 국제적으로 ‘갑’ 행세를 하기 시작한 것은 스페인-미국 전쟁 무렵부터였다. 그들은 바나나 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면서 소위 ‘이론’과 ‘실전’을 겸비하게 됐고 제2차 세계대전부터 오늘날까지 본격적인 ‘실력 행사’를 점점 더 강화해 왔다.

책에서 버틀러는 미국의 “군사 조직”이 부유한 미국 기업들의 이득을 위해 어떤 식으로 이용됐는지 실명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자세히 설명한다. 이런 사실에 대해 어렴풋이 아는 현대인들조차도 그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설명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또 그는 전쟁 지지자들이 대중에게 전쟁의 당위성을 납득시키기 위해 ‘신’을 이용한다는 사실도 밝힌다. 그들은 참전 행위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성스러운 사역으로 미화하면서 군사적 모험에 따르는 경제적 이득 편취는 함구한다.

버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쓴 이 책에서 새로운 전쟁의 임박,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위험성 증가, 미래의 가공할 무기들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보여준다. 또 군사력을 자국 방어용으로만 제한할 것을 주장하면서 일본 군함이 미국 서부 연안에 출몰할 수 있다는 가정을 한다. 나중에 정말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사람들은 버틀러의 이런 언급에 전율했다. 비록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일본의 공격 때문에 고립주의를 끝까지 지켜내지는 못했지만, 전쟁에 내재된 경제적 의미와 제국주의에 관한 버틀러의 관점은 지금도 그대로 유효하다.

마크 트웨인의 『전쟁을 위한 기도』 수록

본서에서는 「제3장 누가 빚을 갚는가?」(104~105쪽)에 나오는 아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마크 트웨인의 반전 엽편소설 『전쟁을 위한 기도』를 함께 수록했다.

"이 전쟁 프로파간다는 너무나 악랄해서, 하느님까지 끌어들였다. 그러지 않은 이가 더러 있긴 했지만, 우리의 성직자들까지 함께 나서서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라고 부르짖었다. 독일인들을 죽이라고 했던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 편이고 독일인들을 죽이는 것은 그분의 뜻이었다.
그리고 독일에서도 명망 있는 목사들이 나서서 독일인들에게 연합국 사람들을 죽이라고 외쳐댔다. 그것은 우리의 하느님과 같은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었다. 이것은 사람들이 전쟁 의지와 살인 의지를 갖도록 하기 위한 보편적인 프로파간다의 일환이었다."


스페인-미국 전쟁 이후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분노한 마크 트웨인은 『전쟁을 위한 기도(The War Prayer)』를 써서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에 보냈다. 하지만 이 여성 잡지는 너무 과격하다는 이유로 게재를 거부했다. 이 작품은 마크 트웨인이 1910년 4월에 죽을 때까지 발표되지 못했다. 신성 모독으로 여겨질까 봐 두려워한 가족들이 만류하기도 했고 친구들도 발표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삽화가 겸 작가인 대니얼 카터 비어드(1850~1941)가 그에게 어떻게든 이 작품을 발표할 건지 묻자 트웨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뇨. 나는 거기서 온전한 진실을 말하긴 했지만, 이 세상에서는 죽은 자만이 진실을 말할 수 있지요. 필시 내가 죽은 뒤에야 발표될 거요.”

퓰리처상 위원회 위원이면서 마크 트웨인에 정통한 전기 작가인 앨버트 페인(1861~1937)에 따르면, 트웨인은 1904~1905년에 이 작품을 쓴 후 곧바로 발표하려 했지만 잡지사로부터 게재를 거부당했다. 페인은 1910년 그가 죽은 후 미발표 원고 가운데서 이 작품을 발견했다. 페인은 이것을 자신이 1923년에 편집해서 펴낸 마크 트웨인 에세이 선집 『유럽 그리고 다른 곳에서(Europe and Elsewhere)』에서 처음 발표했다. 

매우 함축적이고 짧은 풍자소설이면서 산문시의 특징을 지닌 이 작품은 종교와 전쟁의 관계, 전시에 조장되는 무분별한 애국심과 군중심리, 전쟁에 대한 그릇된 환상과 전쟁의 무시무시한 실상을 칼날처럼 예리하게 그려내 반전 문학의 백미로 불린다. 극적인 반전으로 큰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결말이지만 누구나 금방 그 웃음을 그치고 전쟁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본 번역에서는 시적인 분위기를 살리고 독서의 호흡을 조절하기 위해 시 형식으로 편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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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남북한은 지금도 휴전 상태로 심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북한의 도발적 행동이나 발표가 있을 때마다 방산주가 들썩이고 남북 교류가 활성화될 때마다 경협주가 급등한다. 전쟁은 대개 정치에서 시작되고 정치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날 전쟁과 가장 큰 실질적 영향을 주고받는 분야는 경제다. 전쟁이 민족 감정이나 이념보다 경제적 이득에 의해 시작되고 끝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아직도 이념 대립의 틀에 갇힌 채 전쟁에 대해 점점 둔감해지고 있는 한국 국민들에게 이 책은 현대 전쟁의 속성을 이해하고 반전 평화 의식을 가지는 데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4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100주년이 된다. 서구에서는 많은 기념행사와 관련 도서의 출간이 예정돼 있다. 『전쟁은 사기다』도 미네소타 주지사를 지낸 베스트셀러 저자 제시 벤투라의 머리말을 달고 미국에서 새로 발간될 예정이다.

■ 주요 서평

《뉴욕 타임스》(1936)
버틀러 장군은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 가운데 하나이며 “투쟁하는 평화주의자”다. 그는 자신의 영웅적인 전공(戰功)을 자본주의의 침탈 행위로 규정하면서 미국이 앞으로 외국의 모든 전쟁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살롱》(2010)
버틀러는 늘 기득권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평생 동안 필리핀과 중국부터 아이티 그리고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누비며 군사 작전을 폈던 그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 행위에 환멸을 느꼈다. 그래서 1960년대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군산복합체”라는 말을 만들어내기 수십 년 전에 이미 미국의 군국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전쟁은 사기다』라는 책을 펴냈다.

랠프 네이더(변호사, 시민운동가, 논픽션 저자, 미국 녹색당 대통령 후보 5회, 2003)
버틀러는 책에서 전시 부당이득을 취득하는 기업들의 이름을 열거하는 데 한 장(章)이나 할애했다. 또 젊은이들이 “군에 입대하지 않을 경우 수치심을 느끼도록” 만들면서 “하느님까지 끌어들일 정도로” 악랄한 프로파간다에 대해서도 썼다. 버틀러 장군은 “이런 사기를 없앨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제시했다. 전시 부당이득을 취득할 자들을 먼저 징병하라!

신디 시한(반전운동가, 작가, 2012년 미국 대선에서 평화자유당의 부통령 후보, 2010)
오늘날 이 책에 강한 신뢰감이 가는 이유는 저자의 연설이 있고 나서 75년 동안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책에 등장하는 일부 고유명사들을 현재의 해당자들로 바꾸면 소름끼칠 정도로 똑같다. 전쟁 중에 부자들은 늘 이득을 챙기고 가난한 자들은 늘 그 이득에 해당하는 채무를 진다. 언제나 그렇고 예외란 없다.

에이미 굿맨(방송 아나운서, 논픽션 저자, 2011)
퇴역한 미국 해병대 소장 스메들리 달링턴 버틀러는 1935년에 “전쟁은 사기다”라고 말했다. 전시 부당이득 취득에 관한 그의 얇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표현은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의회는 의료보험 예산을 두고 왈가왈부하기 전에 전쟁 비용부터 삭감해야 한다.

크리스토퍼 J. 코인(조지메이슨 대학교 경제학 교수, 2012)
많은 군사적 침략 행위에 참여해 본 버틀러는 전쟁 중에 힘없는 시민들이 전쟁으로 인한 재정적, 육체적, 정신적 대가를 감내하는 동안 소수의 상류층이 엄청난 부당이득을 올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시민, 정치인, 경제인, 학자들은 아직도 버틀러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짐 브룸리(군사학자, 논픽션 저자, 2013)
1935년에 처음 출간된 이 책은 비록 시대적 상황이 바뀌긴 했지만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효한 진실을 담고 있다. 그래서 반전 클래식이자 군사 클래식으로 자리 잡아 널리 읽히고 있다.

마이클 저지마(반전운동가, 논픽션 작가, 2003)
최근에 내가 읽은 『전쟁은 사기다』를 보면 버틀러 장군은 이미 1930년대에 “전쟁은 아주 오랫동안 사기였다”고 말했다. 부시와 친한 기업들은 우리가 낸 세금을 독식하는 계약을 맺고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 전쟁은 확실히 사기다.

길라드 아츠몬(평화운동가, 소설가, 재즈 연주자, 2011)
최고 영예인 의회 명예 훈장을 두 번이나 받은 전쟁 영웅이 군산복합체의 실체를 까발리는 유명한 연설을 담은 이 책은 전쟁에서 소수가 다수를 희생시켜 부당이득을 챙긴다고 말한다. 버틀러는 부당한 정부 정책에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것은 진정한 애국심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필립 A. 패루지오(정치운동가, 칼럼니스트, 2012)
퇴역한 해병대 소장 스메들리 버틀러는 1935년에 『전쟁은 사기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이 얇은 책에서 미국의 외교 정책이 기업들의 이득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조종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오늘날 도대체 변한 것이 무엇인가?

숀 카즈웰(소설가, 출판인, 2010)
1935년에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은 한때 절판되기도 했으나 계속 발행돼 지금은 많은 판본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 버틀러는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감성과 객관적 정보를 전달하며 무시무시한 내용을 부드러운 연설조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정치 책이 아니라 에세이로 읽힌다.

조엘 터닙시드(걸프전 참전군인, 논픽션 작가, 2003)
이 얇은 책에서 버틀러는 전쟁과 전쟁 도발자 그리고 전시 부당이득 취득자 모두에게 분노하고 있다. 아이젠하워의 “군산복합체”라는 개념은 이 책에서 분노하는 대상에 번지르르한 광을 입혀 거창하게 만든 것에 불과하다.

일라이어스 에일리어스(베트남전 참전 해병대원, 사업가, 2011)
1960년대에 나는 베트남전에 참전하느라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버틀러 기지에 두어 번 간 적이 있지만 버틀러 장군과 그의 책에 대해 안 것은 2000년이 되어서였다. 버틀러는 미국 해병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유명한 체스티 풀러 장군보다 많은 훈장을 받았다. 그가 퇴역 후에 쓴 얇은 이 책은 군산복합체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애슐리 스미스(작가, 2003)
버틀러는 무서운 군인이었다. 버틀러가 군대를 이끌고 니카라과에 쳐들어갔을 때 니카라과의 엄마들은 아이들을 훈육하며 이렇게 말했다. “말 안 들으면 (사탄이 아니라) 버틀러 장군이 잡아간다.” 그런 그가 퇴역 후에 완전히 변신했다. 1935년에 펴낸 반전 클래식 『전쟁은 사기다』에서 그는 미국의 군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한다.

■ 지은이 스메들리 버틀러(Smedley Darlington Butler)
1881년 7월 30일 펜실베이니아 주 웨스트체스터에서 3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퀘이커교 집안 출신이었고, 아버지 토머스 스토커 버틀러는 변호사이자 판사였으며 31년간 펜실베이니아 주 공화당 하원의원을 지냈다. 외조부는 펜실베이니아 주 공화당 하원의원으로 활동한 스메들리 달링턴이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1898년에 스페인-미국 전쟁이 일어나자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소위로 임관한 뒤 쿠바로 파견됐다. 이후 필리핀과 중국, 중남미로 파견되어 약 120회의 전투에 참여하며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래서 해병대 최고 훈장인 브레빗 훈장을 수훈하고 미국 최고의 훈장인 의회 명예 훈장을 두 번이나 받은 유일한 전쟁 영웅이 됐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프랑스에 위치한 미군 상륙 기지의 지휘관으로 활동했으며 1929년 마흔여덟에 최연소로 당시 해병대 최고 계급인 소장에 올랐다. 하지만 평소 평화주의, 반파시즘 언행을 한 것이 빌미가 되어 해병대 사령관 인사에서 밀려나 1931년에 퇴역하고 말았다. 퇴역 후에는 반전 평화주의 연설가로 미국 700여 개 도시를 돌며 1,200여 회의 연설을 해 전국적인 명성과 지지를 얻었으며, 1935년에 자신의 연설을 보강해 『전쟁은 사기다』라는 책을 펴냈다. 출간과 동시에 화제작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오늘날까지 꾸준히 읽히고 있으며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반전 클래식으로 손꼽힌다. 그는 또 대공황 시절 부유한 자본가들이 그들에게 불리한 경제 정책을 펴는 루스벨트 대통령을 축출하고 파시스트 정권을 세우려고 한 음모를 폭로해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음모는 나중에 사실로 밝혀졌지만 음모 가담자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는 1930년대의 반전 평화주의 운동을 이끌다가 1940년 6월 21일 필라델피아 해군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 옮긴이 권민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역사 사용설명서』, 『황금 비율의 진실』 등이 있다.


■ 차례

추천사
번역자 서문

제1장 전쟁은 사기다
제2장 누가 이득을 보는가?
제3장 누가 빚을 갚는가?
제4장 이런 사기를 없애는 방법!
제5장 전쟁일랑 집어치워라!

전쟁을 위한 기도

주요 서평